Jueun Bona Lee

아베이루에서 보내는 편지

안녕!

포르투갈 아베이루의 오래된 카페에 앉아서 이렇게 편지를 써. 1856년에 열었다는 이 곳, 카페 페이시뉴는 수녀님들로부터 전해진 500년이 넘는 레시피로 오보스 몰레스라는 전통과자를 만들어 팔아. 달걀 흰자로 옷에 풀을 먹이던 수녀님들이 남은 노른자로 만들기 시작한 것이 기원이라고 하는데, 포르투갈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에그 타르트도 같은 이유로 개발된 디저트였다고 하지. 어쩐지 사람이 한 명도 없는 이 고풍스러운 카페 2층에 혼자 앉아 달짝지근하고 부드러운 오보스 몰레스를 먹고 있자니 편지를 쓰고 싶어졌어.

3주 후면 2년을 꽉 채워 다닌 회사에서도 진짜 마지막 날이네. 참 어렵게 들어온 회사였다. 현지에서 취업을 할 수 있는 비자를 받게 되자마자 족히 200군데가 넘는 회사에 지원서를 쓰고 그 중 80%로부터는 거절 메일조차도 받지 못했던 것이 기억난다. 거절 메일은 어찌나 익숙해지지 않는지 매일 일말의 기대감을 안고 메일함을 열어보고 또 실망하고 울적해하던 밤들도 수두룩했지. 한국에서도 쉽지 않은 취업이 여기서는 더 어려운 것이 당연한 것을 다 알고 시작했는데도 정말이지 마음이 어려운 시간이었다.

다섯 번의 면접을 보고 마침내 오퍼를 받아 계약서에 서명을 한 후 집에서 회사까지 얼마나 걸리나 시험 삼아 가봤던 날도 기억이 난다. 아직 사원증이 없어서 들어가지도 못하는 건물 앞에서 몰래 사진을 찍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는데도 그저 가슴이 벅차올랐는데. 그동안의 노력이 헛되지 않았다고, 돌고 돌아 나에게도 기회가 와서 정말 다행이라고, 일 년 넘게 성당에 들를 때마다 “나고 자란 곳을 떠나 새로이 머무르기로 결정한 이 사회에서 한 명의 사회인으로 커뮤니티에 기여할 수 있는 기회를 달라”고 간절히 기도했던 일이 이뤄진 거라고, 그렇게 일기장에 썼었지.

입사하고 나서의 시간은 때로는 쏜살같이, 한편으로는 또 아주 천천히 흘렀던 것 같아. 스페인에서 유니콘으로 꼽히는 스타트업 내 몇 안 되는 외국인 마케터로 일한다는 것은 우아한 백조처럼 보이기 위해 부단히 물 아래에서 첨벙거리는 것과 같은 느낌이었지. 퇴근하고 집에 돌아와 데이터 분석 강의를 듣고 비즈니스 플랫폼 여기저기를 혼자 탐색하며 나머지 공부하는 학생 같기도 했고, 스페인어도 영어도 100% 다 알아듣지 못해 엉성하게 남들을 따라 웃는 스스로를 보며 현타가 오는 날도 수두룩했고, 이따금 성과가 매니저의 눈에 들어 칭찬 한두마디만 들어도 훌쩍대며 야근하던 시간이 싹 잊히는 것만 같은 그야말로 초짜 직장인이었던 거야.

그 와중에 담당하는 시장이 조금씩 넓어지고, 공석이 된 자리에 급하게 파견되어 처음 보는 프로젝트의 땜빵도 해보고, 이대로는 안 된다고 퍼포먼스 경고도 받아보고, 연봉협상이라는 것도 해보면서 2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다시 생각해봐도 단순히 일을 배우고 조직에 속해 사회생활이라는 걸 알아가는 것 그 이상을 얻었던 것 같아. 이 사회에 ‘정상적으로’ 속해 일을 하고 세금을 내고 사회보장제도에 가입되어 있다는 것이 주는 안도감이라던가 자존감이라던가 하는 것이 분명하게 느껴지는 날들. 내가 누군가에게 의존하지 않고 오롯이 혼자 살아남을 수 있음을, 1인분을 해내고 있음을 가장 쉽게 증명할 수 있는 길이 현지 회사에서 직장인으로 생활하는 것이라는 걸 알게 되었지.

그럼에도, 퇴사라는 것이 곧 다른 차원의 불안으로 나를 이끌 것을 꽤 징명하게 알고 있음에도, 그것을 선택하기로 마음먹은 것은 더 이상 '잘 파는 사람', 즉 마케터로서의 나를 더 이상 견딜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내가 쓴 카피가 사람들에게 가닿는 것을 눈으로 확인하고, 애정을 가득 담은 눈으로 브랜드와 이벤트를 자세히 들여다보고 그것을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줘야겠다는 이 순전한 열정으로 가득 채워 보낸 밤들도 분명 많았지. 그런데 언젠가부터 눈만 뜨면 전날 매출 그래프부터 확인하며 하루를 시작하는 내가 불행해보이더라. 과몰입인지 공사의 구별이 안되어서인지 내 하루가 오로지 그 10초도 안 되는 시간 동안 확인하는 몇 안 되는 수치에 좌지우지되는 것이 날이 갈수록 더 더 감당하기 어려워지더라고. 마이크로매니징하는 상사나 은근한 그룹 짓기가 만연한 오피스 분위기 같은 것은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될 만큼.

3주 후 자유인(!)의 몸이 되고 나면 한 달쯤 재정비의 시간을 가지고 9월 석사 과정이 시작된다. 2년 동안 조금씩 조금씩 모아두었던 돈을 탈탈 털어 등록금으로 납부하고 나니 설레는 마음만큼 왠지 허탈하기도 했지. 꼭 2년 동안의 지난 직장생활이 신기루처럼 사라지는 기분이었잖아. 그렇게 어마어마한 돈이 드는 일이 아닌데도 하고 싶은 것들을 하려면 늘 아르바이트를 해야했던 학부 시절 때 마냥 어쩜 돈은 있다가도 없는지. 퇴사할 때 쯤에는 나를 위한 선물로 다 해져버린 가방 하나쯤 새로 장만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그럴 돈조차도 남지 않았다는 게 어쩐지 조금 서글펐지. 그래도 서른이 되기 전에 입버릇처럼 다짐하던 석사공부를 시작하게 되어서 참 다행이야.

오롯이 오롯이 나를 위한 결정들로 가득 채우는 일 년이 되기를 바란다. 바로 눈앞의 현실을 겨우겨우 쳐내는 선택들을 우선순위에 두어야 하는 이십대였다면 삼십대의 시작은 내가 원하는 것, 내가 즐거운 것, 내가 계속 하고 싶은 것을 더 많이 들여다보고 그것에 가까워지는 결정들을 앞세우길 바라. 그것이 이기적인 것도, 누군가에게 미안해야하는 것도 아니라는 걸. 그것이 의심스러울 때마다, 또 다시 수없이 마주하게 될 어려운 결정의 순간들이 찾아올 때마다 이 편지를 다시 꺼내 읽을 수 있기를 바라. 오늘의 내가 혼자 바로 설 수 있는 것만이 자유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필요할 때에는 남에게 기댈 줄 알고 그들이 필요로 할 때는 그들이 기댈 수 있는 어깨를 내어줄 수 있는 것 또한 자유라는 어떤 책에서 본 말을 기억해.

어쩐지 눈물이 날 것만 같은 기분이 드네. 더위를 피해 무작정 지도를 켜 찾아온 이 곳이 내 마케터로서의 인생에서 마지막 휴가지가 된다니 신기하고 후련한 기분이 든다. 한껏 욕심부리고 마음껏 즐거워하고 치열하게 탐구하면서 찾아오는 날들을 기쁘게 맞이하길. 용기가 바래지지 않도록 이 편지가 미래의 나를 응원하고 있길.

2025년 7월 11일, 아베이루에서